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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는 보육이야기] 아이들의 첫 번째 닻이 되어주는 '교사다움'의 길을 찾아본다

  • 작성일2026-04-23
  • 조회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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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육아종합지원센터 2026년 5월 뉴스레터 _ 함께 나누는 보육이야기/

 

 

 

 

 

아이들의 첫 번째 닻이 되어주는 교사다움의 길을 찾아본다

 

 

최명희 교수(신구대학교 유아교육학과)

 

 

나의 첫 교사 생활은 19893월 서초구에서 시작되었다. 매화반 선생님. 24살 어린 담임이 42명 아이를 어쩌지 못해 슬픔과 절망이 빼곡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든 잡아보겠다고 허둥대며 하루를 보내고, 후회에 휩싸여 퇴근하던 반포의 어느 골목이 기억난다. 지금 돌아보면 무능하기 짝이 없는 선생님이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좋은 선생님 비법을 하나도 알지 못하던 때였다. 그래서 매화는 나에게 조금 특별한 꽃이다.

 

 

운동장을 끼고 연구실로 올라가는 중간쯤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아직 겨울이 남아 있을 때 옅은 노란 불빛 같은 황매화가 혼자만 먼저 피어난다. 3월 초 개강 즈음이 되면, 나는 매화 봉우리가 벌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손톱만큼 작은 꽃에 초점을 맞추고 사진을 찍어 카톡 프로필에 한동안 올려놓는다. 나에게는 일종의 개강 의식과 같은 일이다. 그렇게 해야 한 해를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다시 잘해보리라용기를 내던 24살의 매화반 선생님이 되는 것 같다. 곧 나처럼 24살의 교사가 될 제자들에게는 미안한 선생님이 되지 않으려고 매년 매화 사진을 찍고 다짐한다.

 

 

한강 가까운 반포, 법원이 있는 서초동 언덕, 벚꽃이 아름다운 방배동, 우면산 아래. 서초구 어디선가에서 기쁨, 슬픔, 후회,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또 다른 많은 매화반 선생님들을 떠올려 본다. 우는 아이 달래다가 아이가 안쓰러워 몰래 속울음을 삼키는 선생님, 엄마 손을 밀어내고 선생님 품으로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기, ‘선새미, 아파?’하고 이마를 짚어주는 아주 작고 보드라운 손, 선생님을 귀하게 존경해 주는 어느 따뜻한 부모, 아아 한잔과 엄지척을 선물로 주는 옆 반 교사. 고소하고 달콤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서초구의 구석구석 작은 어린이집들.

 

 

사람들은 아마도, 아니 누구나, 영유아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흙 속에 심은 씨앗이 3주 만에 싹으로 삐쭉 돋았어도 도대체 흙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듯이, 영유아기는 우리 모두의 숨겨진 역사이다. 교사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가 완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 삶의 처음을 본다. 그걸 꼭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냥 우리 반 아이가 아니라, 마치 과거의 나를 만난 듯, 기억나지 않는 어린 나를 만나 애틋하게 어루만져 주는 듯, 감동적인 마음을 쓰는 일이다. 매일 한결같이, 따뜻하게 웃어주고, 잘못한 것 없으니 괜찮다고 쓰다듬어주고, 울면 그칠 때까지 안아준다. 그런 선생님 때문에, 아이 마음 속에서 태어나길 잘했다는 감각이 자란다. 그렇게 서초구의 좋은 선생님들이 살아가고 있다. 내가 되려 선생님 한 명 한 명을 안아주고 싶을 만큼, 대견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좋은 사람은 빛이 날 만큼 좋은 사람이다. 빛이 나서 다른 사람을 밝게 비추어주는 사람이다. 좋은 선생님도 그렇다. 좋은 선생님은 실수를 잊어주고, 기쁘게 바라봐주고, 기대를 함께 걸어준다. 그래서 아이가 맑고 밝은 삶의 기운을 얻게 하는 선생님이다. “너는 무척 귀한 존재란다. 그걸 꼭 알아야 해. 너는 내일부터 모든 것을 더 잘하게 될 거야. 내일 더 잘 뛸 테고, 가위질도 더 잘하게 될 거고, 기분도 더 좋아질 거야. 너는 너 자신이 점점 더 좋아질 거야.”라는 걸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그대들처럼.

 

 

선생님 자신도 좋은 나가 되어야 한다. 부디. 내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을 툭툭 털어내고 아침마다 부활하듯 새롭게 태어나 자신에게 기대를 걸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가 눈 흘기더라도 소리 내어 웃어넘기고, 누가 좀 억울한 소리를 하면 도리어 그 사람을 안쓰러워하는 깊은 마음자리를 갖길 바란다. 그게 그대를 지키는 일이니까. 그만큼 그대들은 한없이 귀하고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흔들리는 시대, 아이들과 함께하는 항해, 안전한 어느 지점에 단단한 닻을 내리기를.